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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그라피아/나중에 보면 부끄러울지도

[부끄] 피요피요 새소리

가을 물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산책이란 참 좋아서 바람이 손끝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참 좋아한다.

  마구 열정적으로 뛰면서 조깅을 하는 것도 좋지만 걷다보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니까. 여름의 매미소리는 너무 아찔해서 싫다. 여운 없이 울어대는 소리 때문에 나까지 바빠지는 느낌이 드니까. 나는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승부욕을 알기 때문에 바쁘면 바쁠 수록 팍팍해 지는 내 인심이 싫다. 물론 그 에너지 때문에 지금 이자리에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는 피요피요 하고 나는 새소리다. 물론 조류는 싫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이  그렇게 좋았으면서도 두깔레 궁전 앞에서의 그 악몽적인 비둘기들의 움직임이란 정말이지 너무 끔찍했었다. 비둘기의 그구그구하는 울음 소리 때문이었을까? 피요피요 하고 가볍게 떨리는 새 소리는 정말 좋다. 푸른 나무들과 함께라면 더 행복하겠지.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자작나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의 자작나무를 좋아한다. 그러면 하얀 나무살의 까만 점박이 들이 더욱 반짝반짝 빛나고, 여스름한 나뭇잎은 푸른 빛을 낸다. 거기에 더하여 숲 냄새가 더 짙어져서 마음이 편안해 진다. 특히 선유도공원의 짧지만 여리여리한 자작나무 길을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침은 거위털이 들어 있는 하얀 침구 속에 포옥 쌓여서 자다가 조심조심 들어오는 햇살에 깨어나서 내 키보다 이 만큼은 더 큰 창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면 머리위로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새소리를 듣는 것이다. 무엇이든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탓에 여유로운 시간들이 자주 그리워 지는 것 같다. 스스로 몰아치는 성격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앉아서 자연을 즐기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는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오후는 추적추적 비가오는 날이다. 조용한 가운데 타닥타닥 빗소리를 들으면서, 코팅 되지 않은 물푸레나무 탁자에 앉아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무 냄새를 맡으면서 에쿠니 가오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비가 오는 유리창 밖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따뜻한 얼그레이 한 잔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오후가 아닐까?


  가을 물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여름이 되면 늘 작약 보러 가야지. 폭탄처럼 흩어져 있는 작약을 보러 가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늘 그냥 넘기는데, 이번 가을에는 가을의 공원을 보러 가고 싶다. 가을 물이 오르는 소리를 들으러 그 어디라도 가고 싶다. 가을의 포근한 느낌이 있다면 시린 겨울 쯤은 너근히 참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때가 오면 또 엄살을 피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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